그러니까 한 몇년전 이야기다.
광주 대인시장에 내 고물차를 집 뒤편에 주차시켜 놓을 때쯤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집 건물 안으로 빨리 뛰어들어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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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맞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의 비는 불쾌한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어설프고 추적거리는 비였다.
차에서 내릴라니까 장애인 아저씨 한 분이 휠체어를 탄 채 내 앞을 지나갔다. 휠체어 등받이에는 무슨 천 같은 것이 걸쳐 있었는데, 그것이 빗물이 괸 더러운 길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저기요! 라고 외쳤지만 못 들었는지 아저씨는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골목길 안으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떨어진 물체를 자세히 봤다. 남루해 보이는 아저씨처럼 그 물건도 남루했다. 그건 아주 낡은 스웨터였다.
여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본능에 따라 그냥 집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양심에 따라 스웨터에 손이 더러워지는 것과 비맞는 것을 감수할 것인가? 결국은 스웨터가 날 이겼다. 하필이면..... 누군가 손으로 짠 스웨터임이 분명해보이는 모양새였다.
그건 금전적인 가치는 1000원도 안될지 모르지만 그 아저씨에게는 매우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지 않나. 젠장 이 스웨터는 아저씨의 친구가, 아내가, 어머니가, 자녀가 짜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분명히 이것을 짜느라고 하룻밤을 꼬박 지샜을 것이다.
"그에게 소중한 것일수도 있다"라는 그 1%의 가능성 때문에 도저히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스웨터를 손으로 집어들고 비맞는 거리를 쏘다니며 휠체어 자국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시장으로 들어섰다.
그때 내 차림은 반바지에 슬리퍼였다. 날씨는 추웠지만 어차피 집에서 잠깐 나온거고 그놈의 고물차에서 새나오는 기름내 섞인 히터바람에 충분히 체온을 의지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진흙에 푹 젖은 스웨터를 아기를 안은 애아빠마냥 품고 빗속을 쏘다니기엔 적당한 차림이 아니었다. 시장 사람들이 미친놈 행색을 하고 두리번거리는 날 주목하며 손가락질 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한 일, 해결을 봐야 했다. 내 몸에 맞는 옷이 아닌 이상 그냥 입을 수도 없고 다시 떨어진 그 자리에 고이 뉘이고 집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스웨터의 주인을 찾았다. 아저씨는 왠 두부집 앞에 있었는데 그 두부집 주인과 즐겁게 대화중이었다. 아마도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아저씨!하고 외치며 그분의 등을 살짝 쳤다. 깜짝 놀라며 날 보더니 더욱 깜짝 놀라는 모습.
당연하다. 누군가 자신의 등을 쳐서 고개를 돌렸는데 왠 덩치큰 녀석 하나가 이상한 차림에 비를 흠뻑 맞고서 창백한 안색에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헉헉거리면서 자신을 며칠 굶은 사냥개마냥 뻔히 내려다본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나라도 기겁을 했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스웨터를 돌려주면서 분위기는 살가워졌다. 아저씨는 굉장히, 정말 내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고마워했고 따라서 기분이 꽤 좋아졌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내 팔을 아저씨가 붙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팔힘은 굉장하다.
"두부 한 모 받아들고 가요."
즉 스웨터를 찾아준 선행의 댓가는 두부였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거절하기도 모한 상황이었다. 한 모에 500원인가 1000원인가 하는 두부를 받아들고 집에 오자 아무도 없었다. 두부는 식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온기가 꽤 남아있었다. 뒀다가 나중에 데워 먹거나 어머니의 레시피에 흡수되도록 방치하느니 그냥 지금 먹는게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허기도 적당히 있었으므로 나는 두부가 담긴 비닐을 접시삼아 젓가락으로 커팅을 하며 간장도 김치도 없이 오직 갓 솥에서 생산돼 나온 뜨뜻미지근한 두부의 맛만을 느끼며 아주 천천히 아주 맛있게 두부 한 모를 먹었다.
내가 지금껏 먹은 두부 중에 단연 최고였다.
장애인이 주었기 때문에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겠다. 물론 아저씨에겐 감사하지만 두부만 놓고 말하자면 그저 맛 자체가 최고였다. 오직 순수한 두부만을 main으로 요기를 한 번 해보시라. 입안, 혀 안에서 입자가 갈리고 부서지는, 그러면서 달짝지근한 콩냄새가 기관지를 자극하면서 목구멍 안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내려가는 그 두부맛 체험을 한번 해보시라. 그 순간 세상은 오직 두부와 같은 순백색으로 화할 것이다! 같은 두부라도 된장찌개 속에서 헤엄치는 녀석들과는 감히 그 격을 달리한다.
"화"라는 책에서 틱낫한 스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오직 당근만을 먹으면서 그 맛에 집중하면 당근이 가지고 있는 모든 아름다운 맛을 멀티플렉스로 느낄 수 있다"고....
대충 공감은 갔지만 그날 두부를 먹으며 공감수치는 100으로 상승했다. 내가 좋아하는 버거킹 치킨버거와 두부 한 모를 비교해보자면, 말보로 입에 문 카우보이와 곡주 한 잔에 가야금 켜는 신선 정도의 수준차이라고나 할까.
그 뒤로 그때만큼 두부의 감동 내지는 미각의 감동같은 것은 경험하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스웨터를 찾아주기로 한 그때의 내 결정이 결과적으로 아주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세월을 휠체어와 바퀴를 굴리기 위해 팔이 만들어내는 단순동작에 의지해왔을 그 아저씨에게도 무척 감사하다. 그 사건을 계기로 미식에 대한 견문이 폭발적으로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건 역시 내가 이상한 놈이라설까.
썰이 길었다. 한번 요리, 내지는 조리, 혹은 조미 따위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식재료를 한 번 천천히 음미해보시라.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달라보인다. 두시간동안 B급 액션영화 한 편 보는것보다 확실히 낳으리라.
한 번 해보시라. 세상엔 작은 기적이 꽤 많다.
Posted by mep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