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집에 왔다. 근처에 볼일을 보고 점심이나 같이 먹으려고 예고도 없이 들렸다고 한다. 하긴 내가 집에 없으면 그것은 장기간의 외출일테니..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은 나에게는 아주 많이 부담되는 시간이다.
그리고 같이 밥을 먹으로 나가기에는 샤워에 옷을 입고 어쩌고의 그 부산스러움과 귀찮음을 감당할수가 없었기에 졸린 눈을 부비며 내가 밥을 해 주겠노라고 이야기 했다.
차마 인스탄트음식을 대접할수가 없었기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이리저리 재료가 눈에 뛴다. 내가 늘 생각하던 생각은 '난 요리를
잘한다'였다. 혼자 10년넘게 살아오면서 비록 인스탄트를 주식으로 삼고 살고는 있지만 가끔씩 나도 나를 위해 요리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까탈스런 내 입맛에 내 스스로 만족하며 스스로 대견스러워 할때가 많다.
일단은 메뉴를 생각해 내었다. 일단 나에게는 아침이고 밥을 먹을땐 언제나 국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일차적으로 참치김치찌게 (가장 끓이기가 쉬운 국중의 하나)을 생각했다.
그리고 근처 반찬가게에서 사놓았던 반찬들 몇가지...만으로는 많이 성의 없어 보일거 같아서.. 콩나물이 눈에 띄길래 콩나물
무침을.. 하여간 이렇게 대충 차려 주기로 하고 쇼파에 앉아 있으라고 하고 귤과 음료수를 던져 주고 담배를 하나 물고 요리를
시작했다.
모든 것은 순조롭고 익숙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재료가 준비되고 테이블에 차려놓고
나니... 무언가 빠진듯한 느낌과 부족한 느낌... 냉장고를 열어보니 얼마전 영광에 갔다가 산골신사님이 곱게 싸주신 토종
유정란들이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맞다 '계란 후라이'..
뽕나무 잎을 사료로 먹고 낳은..'토종 유정란'
난 계란 후라이를 참 이쁘게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다.. 물론 자부심이라고 까지 할것은 없지만.. 계란 후라이는 몇가지의 중요함이 있다..
첫째는 노란자에 있다. 계란후라이를 하는 내내 노란자가 터지지 말아야 한다 계란의 뒤집을때 그 적당한 정도로 익었을때 뒤집는 기술을 요한다.
둘째는 밥위에 올렸을때 노란자에서 약간은 덜익은 계란의 자위가 흘려 내리지 말아야 하며 촉촉함은 유지 하여야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적당한 익음에 있다. 둘째랑 상당히 유사한 말이지만.. 계란이 전체적으로 타지 않고 노릇노릇한 색으로 윤기가 자르르 흘러서 누가봐도 먹기 좋게 보여야 한다는..
어째든 계락후라이 두개를 한번에 할 프라이 팬이 집에 없기에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의 계란 후라이는 늘 그렇듯이 정말 성공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그 만족함의 여세를 몰아 두번째 계란 후라이를 만드는 순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계란이 너무 급속히 익어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난 계란후라이를 두개이상 만들어 본적이 없다. 늘
혼자였고.. 다른 사람이 같이 있을때는 늘 나는 밥상에서 평가의 어려운 역활을 담당했기에..
두번째 계란후라이는 점점 나쁘게 진행되어 갔고 당황한 나는 거기다가 노른자를 터트리는 수습할수 없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많이 고민을 하였다.
이 계란을 누구를 먹이는가.. 또한 보일것인가... 밥속에 숨길것인가.. 소심한 A형 답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때... 결국 후배가 보고 말았다.. 어째든 식사는 잘 마쳤다.. 그리고 후배는 돌아갔다...
후배가 돌아가고 난 후..
난 아직 둘이 살기에는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절실히 깨닳았다. 물론 둘이 산다는 것의 불편함도 잘알고 있지만 가끔은 절실히 필요하게 느낄때도 있으니 누군가를 받아들일 준비는 참 많은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든다.
고민중이다.. 계란프라이를 다시 연습해야 할것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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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로.. 요즘 유기농 생산자분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한가지 습관이 생겼다..
직접 만나고 직접 현장을 둘러보면서 생산자분들께 직접 말씀을 들었던 그 먹거리외에는 손이 잘 안가는 것이다. 평소에 별탈없이 좋아
보이는 그 먹거리들도 가려진 부분엔 어떤 습기 어두움 탁함이 있는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런곳이
많고..
문득, 이건 오롯히 먹거리에 대한 순진과 순수의 차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은 모르는거고 순수는 아는거다. 순진은 그거밖에 몰라서 다른 길을 갈 수 없는 것이고 순수는 모두 알고 느껴봤지만 결국 갈 길을 정한 것이다.
따라서 순진이나 순수나 보여지는 위치는 서로 같다. 지구를 돌다 돌다 보면 어느새 시작한 출발점에 다다르는 것처럼. 위치가 같은 만큼, 순진과 순수는 식별되기가 쉽지 않다.
좀더 복잡해지고, 다단계되어진 이 사회..
어떤 먹거리든 복잡 세련되지 못하면 썰렁하고 빈티나고 없어보인다는 말까지 듣는다. 요리를 하면 음식재료의 맛보다 조미료의 맛이 더 중요해지고.. 사람들은 아예 조미료의 맛을 음식의 맛으로 알아버리곤 한다.
순진함이란 것이, 덜떨어져 보여 한발짝 더 나아간 것들을 찾곤 한다. 한발짝 한발짝 항상 자기 위치보다 한 발짝 더 앞에 있는 것들을 좇는다.
난 순진하게도 그 많은 좋은 먹거리를 놔 두고 세련된 그것들에 손이 갔었다.
하지만 이 모든건 나의 순진함을 이용한 조각된 연출에 불과하다는걸 이제서야 서서히 깨닿고 있다.
검은 통에서 알을 낳는다고 한다.